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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를 만들어 보자

by 오돌


2013년 가을은 나름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것같다. 가을학기 티칭을 하면서 이것저것 다양한 실험을 해보는 중인데 당연히 잘 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만, 큰 줄기로 봐서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금 하는 여러 시도 중에서 가장 의욕적으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강의 안에 퀴즈쇼 형식을 차용하는 실험이다. 강의 막 시작할 때, 끝나갈 때, 그리고 중간 언저리에 학생을 골라서 퀴즈문제를 풀게 한다. 맞추면 보상을 주고, 틀리면 그냥 웃고 마무리하는데, 그 다음이 사실은 중요하다. 퀴즈 문제는 시사뉴스에서 소스를 가져 와서 내가 직접 만든다.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지만 가급적 그때 그때 강의 목표에 부합하는 문제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문제를 풀고 나면 내가 간단하게 정리를 해 주면서 왜 이게 답인지를 설명해 주고 배경맥락을 설명해 준다. 


이 방법이 파워포인트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지루하게 강연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나고 교육효과가 뛰어나다는 게 내 판단이다. 처음 햇병아리 초보입문자로 강의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에는 줄구장창 말만 했었다. 30분 정도 지나면 예의상 참고 있던 학생들이 곳곳에서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곤 했다. 그때는 막 운전대를 잡은 초보 운전자처럼 주의 상황 살펴가면서 여유롭게 학생들과 대화할만한 내공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솔직히 대화 자체가 두려움의 기피대상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말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강의실 안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시간때우기용 그룹활동 시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강의용 대화술도 향상되었다. 강의 중간중간에 유투브나 테드를 틀어 주는 것도 나에게나 듣는 학생들에게나 너무나도 감사한 시간이 되어 주었다. 이런 와중에 학생들 공부를 좀더 시켜 보겠다는 욕심과 강의 중간중간에 지루함을 깨기 위한 장치로 깜짝 팝 퀴즈(재미삼아 가볍게 푸는 방식)를 도입했다.


이러면서 그럭저럭 초보선생 딱지는 뗄 수 있었던 것같다. 지금은 상당히 능숙하게 그리고 좀 실수해도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상황을 무마할 수 있는 정도의 두꺼운 얼굴을 장만하였다. 이제 좀 욕심을 내 볼까 싶어 해 보는 새로운 시도가 앞에서 설명한 이것저것을 엮어서 종합한 <퀴즈쇼>이다. 


사실 매일매일 뉴스를 오랜 시간 보는 뉴스 정키인 나는 퀴즈문제를 만들 소스는 무지하게 갖고 있다. 오히려 문제를 쓸 시간이 부족한 게 장애물이라면 장애물이다. 문제를 잘 쓰는 건 더욱 어렵다. 간단명료하면서 교육적이고, 그러면서 학생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오답 논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내 입장에서는 쉬워 보이지만 학생들은 거의 풀지 못하는 문제라서 실패인 경우도 빈번하다. 난이도 조절, 힘조절도 굉장히 어렵다. 문제에 유머를 집어 넣으려면 시간을 두 배로 투자해야 한다. 그러고도 학생들을 웃게 만들 가능성은 잘 봐줘야 반반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 바로 선생 + 퀴즈쇼 진행자를 적절하게 섞은 괜찮은 캐릭터를 만드는 일이다. 이 작업은 학기 초에 바로 첫 시간부터 철저한 계산하에 시도해야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 2주 정도 지나면 이미 학생들 사이에 나의 이미지가 고착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 내기가 어려워진다.


이번 학기에는 초반부터 아주 과감하게 캐릭터 변화를 시도했다. 과거에 내가 만들고 유지해 온 약간 고리타분한 캐릭터의 절반 정도를 던져 버리고, 훨씬 더 유연하고 능글맞고 실없는 유머도 툭툭 던지는 캐릭터, 가끔 왓더퍽이나 쉣 소리도 우스개 삼아 해도 학생들이 웃고 넘길 수 있을 정도의 그런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테면 What the fuck이라고 안하고 what the fox라고 말장난을 쳐서 피식 웃게 하면서 욕질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런식이다. 이거 잘못하면 학생처에 신고들어갈 수 있으니 함부로 따라 하지 마시라).


내가 이런 캐릭터를 만들면서 주로 참조하는 게 바로 시사코메디언 존 스튜어트, 그의 제자이자 청출어람격인 스티븐 콜베어이다. 이들은 한국으로 치면 썰전이나 나꼼수같은 케이블 코메디뉴스쇼를 진행하는데, 복잡한 사안을 쉽고 재미나게 풀어내는 데 특출난 재능을 갖고 있어서 젊은 층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진짜 뉴스맨들과 비교해서 엄청나게 막강한 사람들이다. 몇 년째 이 사람들을 보고 관찰하다 보니 뉴스를 재미나게 포장하는 방법, 그걸 표정과 목소리, 제스쳐를 통해서 유머러스하게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같다. 


강의의 템포와 퀴즈게임의 템포를 조화롭게 이어가는 건 상당한 현장체험과 시행착오를 필요로 한다. 올해는 다양한 실험을 해 보는 베타테스트로 만족하고, 내년에, 아마 여름후에나, 진짜 한 학기에 걸쳐 진행되는 마라톤 게임쇼를 강의와 연계해 론칭할 생각이다. 학생 입장에서는 게임쇼 참가자가 되어 한 주 한 주 단계를 돌파하면서 사이버머니(내공점수)를 축적하고, 팀플레이를 하면서 결국 최종승자를 목표로 게임을 풀어갈 것이다. 이게 될려면 상당히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어쨋든 그 쪽으로 가 볼 생각이다. 


덤으로 욕심을 내 보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다. 내가 만들고 진행하는 퀴즈쇼를 녹음해서 팟캐스팅하는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십중팔구는 영어판으로 나올 것같다.  요즘은 한국뉴스 읽는 시간이 아주 제한적이고, 영어판 뉴스 보는 시간이 훨씬 많다. 게다가 생계와 직결된 강의용 퀴즈문제는 아무래도 꾸준하게 만들 수 있다 혹은 만들어야 하는 잇점이 있다. 한국어판은 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긴 한데, 지속가능성이라는 면에서 아직 확신을 갖기 어렵다. 그래서 영어판 팟캐스트 프로젝트부터 밀어 부쳐 보려고 한다. 


퀴즈쇼는 당연히 혼자 할 수 있는 성격의 프로가 아니다. 무조건 둘 이상의 사람이 필요하다. 문제도 혼자보다는 여럿이서 함께 만들어야 재미와 다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진행도 혼자보다는 둘어서 역할분담하는 쪽이 더 높은 퀄러티를 뽑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심 같이 작업할 사람들--특히 학생들을 물색중이다. 지금 내 클라스에서는 서너 명정도가 이쪽으로 재능이나 관심을 보여 주목하고 있는데, 학기가 끝나기 전에 운을 띄어볼 참이다. 한남학생은 영화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다른 남학생은 온라인게임(lol류) 해설가를 꿈꾼다. 여기에 라디오쇼 진행자가 되고 싶은 여학생이 있다. 이들말고도 방송쪽으로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이 몇몇 더 눈에 들어오는데, 모르겠다, 얼마나 나랑 작업을 하고 싶어할 지는. 바램같아서는 두 명 정도가 합류해서, 함께 문제를 만들고 출연자를 섭외해서 퀴즈쇼를 2주에 한 번 정도 녹음하는 일정으로 갔으면 좋겠다. 이도 저도 안되면 그냥 나 혼자 원맨쇼하는 식으로 가는 거고....


어느 정도 틀이 잡히면 한국어판 스핀오프도 시도해 보고 싶은데, 이걸 하려면 스카이프를 이용해서 참가자와 화상통화로 퀴즈쇼를 풀어나가야 할 것같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할 것같긴 한데, 물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격차를 좁히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출연자 섭외하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다. 아는 사람 몇몇 비비다 나면 금새 밑천이 바닥날테고, 솔직히 한국에서 팟캐스트 인구가 얼마나 될 지도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열심히 해도 반응이 없으면 실망스러울테고...이런 망하는 테크를 타게 될 것같은 걱정이 앞서서 쉽사리 한국어판 퀴즈쇼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나저나 요즘 우리나라 방송에서는 어떤 퀴즈쇼가 유행하는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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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경제특강] 경제라는 기계가 작동하는 법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쪽 세계에서는 큰손으로 통하는 투자전문가 댈리오라는 사람이 자신의 거시경제론을 재치있는 애니메이션과 잘 버무려 유튜브에 공개했다. 거시경제에 대해 뭐라 코멘트할만한 능력이 안되는지라 공부하는 셈치고 쉬엄쉬엄 들어봤는데 상당히 내적논리가 탄탄해서 경기변동이나 리세션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결론 한두 가지는 갑툭튀하는 경향이 보여서 맘에 들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투자 쪽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뉴욕타임즈가 기사를 쓸 정도니 뭐 믿고 볼만하다고 봐야....) 밑에 영어자막이 나와서 잘게 끊어서 들으면 큰 무리없이 따라갈 수 있다.


요기에 가면 해당 웹사이트에서 관련문서를 제공한다. 

http://www.economicprincipl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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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둘째주 미디어 일기

by 오돌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Fall break가 와서 책을 들여다 볼 시간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책에 밑줄 쳐가면서 정독을 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습관은 호사스럽기만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정성스레 한줄 한줄 읽어내려갈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집안일도 해야 하고 직장일도 해야 하고 놀기 좋아하는 젠하고도 놀아 줘야 하고... 


이런 와중에 생활습관에 큰 변화를 주면서 그나마 좋아하는 책읽기 시간을 늘릴 수 있게 되었다. 이른 아침에는 무조건 산책을 해야 하는 부지런한 강아지 제니가 언제나 나를 깨워 준다. 방문을 살짝 열어 놓고 자면 젠은 어김없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찾아 들어 와서 나의 단잠을 깨우고, 방문이 닫혀 있으면 그 앞에서 기다린다.  근데 놀랍게도 젠이 내는 작은 소리가 나를 깨우는 것이다. 예전같으면 다시 잠을 청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게으름은 호사스럽고 누리기 미안스러워진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젠과 함께 산책을 나선다. 여름에는 5시 반정도에 집을 나섰지만 지금은 아침해가 늦어져서 6시 반이 넘어서야 신발끈을 동여맨다. 아침산책이라는 새로운 습관과 함께 온 또 하나의 손님은 새로 산 아이패드로 산책 중에 듣는 팟캐스트이다. 


이전에 한 번 팟캐스트를 들을려고 다운받아 놓았다가 그냥저냥 시간이 없어서 몇 번 듣다가 밀린 숙제처럼 폴더에 쌓인 팟캐스트를 멀리하게 되었다. 


지금은 뭐 더 재미난 거 없나 남는 시간을 매워줄 팟캐스트를 찾아 아이튠스를 검색하는 경지에 이르렀을 정도로 팟캐스트 열혈팬이 되었다. 아침, 저녁으로 동네를 싸돌아 다니다 보니 팟캐스트 들을 시간이 차고 넘치게 되었다. 


이러저리 걸러 본 결과 남는 건 주로 미국 공영라디오 npr계열 팟캐스트들이다. 웃음소리에 묘한 중독성이 있는 태리 그로스가 진행하는 <프레쉬 에어>는 미국 대중문화를 이해하는 데 아주 유용해서, 내 강의 준비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근자에 발견한 <웨잇 웨잇 돈 텔>이라는 npr 시사퀴즈쇼는 너무나 웃겨서 나를 길가다가 실성한 사람처럼 낄낄대게 만든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팟캐스트도 잡지처럼 드라이하지만 유용한 국제정보 소스가 되어 준다. 


짬짬이 남는 시간에는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본다. 읽는다고 말하는 게 미안할만큼 대충대충 슥슥 훓어 보곤 한다.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에 뭔가 흔적을 남길 수 없으니 더욱 손놀림이 빨라 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동네 도서관인데도 너무너무 잘 조직되어 있어서 괜찮다고 소문난 신간서적들이 제깍제깍 들어온다. 그러니 밀린 책들을 읽으려면 더욱 눈알을 빨리 굴릴 수밖에 없다. 


엊그제는 오랜만에 서점 반즈앤노블에 가서 책을 한 권 샀다. <Simplify your life>, 대충 번역하면 <단순하게 살아라: 천천히 살면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즐길 수 있는 100가지 방법>이란 2012년의 베스트셀러이다. 그냥 서점에 서서 슥슥 읽어도 끝낼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책이었지만 책꽂이에 보관하면서 한 번씩 생활 점검용으로 복습해 보는 것도 좋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책꽂이보다는 주로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잠자리에서 불끄기 전에 한두 장씩 읽어 내려가는 중이다. 


이 책의 저자 일레인 제임스는 원래 쇼핑을 사랑하는 여피족의 삶을 살다가 우연한 기회에 각성을 하고 삶 자체를 재구성해서 지금은 여유롭게 심플 라이프를 즐기는 중이라고 증언한다. 원래 그녀와 남편의 직장은 뉴욕시에 있어서 일하고 퇴근하면 1시간 반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도합 세 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하니 아무리 칼퇴근 문화가 정착된 미국이라 해도 뭔가 즐길 시간적 여유를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마치 경기도 베드타운에 살면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우리 30~40대들의 삶과 엇비슷했을 것이라는 상상도 해 본다. 


결국 이직을 결정한 이 부부는 지금은 바닷가가 가까운 동부 해안의 중소도시에 정착한다. 새 직장은 집에서 15분 거리이고, 반대 방향으로 15분을 달리면 파도소리가 들리는 모래사장을 만날 수 있다. 매일 아침 개를 데리고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여유로운 하루를 시작한다고 저자는 자랑을 늘어 놓는다. 집값이 상대적으로 싼 동네라 경제적으로도 여유롭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내 직장은 걸어서 10분거리 -_-, 동네는 백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 너른 길에 가로수가 울창해서 걷기에 아주 좋다. 집값도 저렴한 편이고, 그에 비해 택스가 센 편이지만 그만큼 교육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애들 키우기도 만족스럽다. 땅이 넓어서 스쿨 버스를 운용해야 하는 대부분의 미국 학군들과는 다르게 이곳은 소도시여서 유치원을 제외한 모든 학교들이 스쿨 버스를 운용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걷거나 부모의 차로 이동한다. 여기서 아낀 돈으로 교육에 투자해서 이곳 공립학교들의 평가도 아주 좋다. 


어찌보면 일레인 제임스보다도 내가 더 심플하게 사는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차고에 쳐 박혀 있는 보트를 처분하라고 권하지만 나는 고무튜브말고는 물에서 탈 것도 없고, RV같은 캠핑카를 갖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없으니 관리를 고민할 필요도 없다 (아, 눈에서 물이....). 와이프 타박이 맞는 것도 같다. "이미 심플한데 뭘 더 심플하게 살려고? 나한테 다 시킬려고오?" (이 대목에서 말꼬리가 하늘로 올라간다).


돈 많이 버는 걸 포기한 댓가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은 직업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하는 일이 단조로운 것은 아니다. 스타일상 학생들에게 이것저것 시키는 게 많아서 지금까지 채점하다가 1년을 소비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실자실하게 할 일이 많다 (지금도 쌓여 있는데 미루는 중 -_-). 


채점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이번 학기에는 원칙을 하나 정해서 비교적 잘 지키는 중이다. 절대 5시 이후에는 수업준비를 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도 가끔 저녁식사 후 내일 뭐하나 머리를 굴리긴 하지만,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진 않는다. 초짜 시절에는 밥먹고 직장 오피스로 나가서 야근을 하기도 했는데 그 때는 내가 멍청해서 그랬던 것같고 지금은 닳고 닳아서 그런 짓을 하진 않는다. 


대신 낮에 시간을 좀더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일에 집중하고, 그동안 쌓아온 경험치가 있으니 시간이 부족해도 요령껏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일레인 제임스는 직장과 보다 작은 집으로 옮기면서 남게 된 시간을 활용해 책읽는 시간을 늘렸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책도 쓰게 되고 그러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 책이 여러 곳에 번역되어졌다고 하니 어쩌면 한국어판도 있을지도....). 그래서인지 그녀는 자신있게 너의 취미를 일--그야말로 돈버는 그런 일--로 전환하라고 조언한다.


그녀의 한 변호사 친구는 장기휴가를 얻어 이태리에 머무르다가 우연찮게 조각을 접하게 되고, 그에 빠져든다. 거기서 열정과 재능을 발견한 그 친구는 변호사를 때려 치우고 전업 예술가의 길로 커리어를 전환한다. 아마도 변호사로 벌어둔 돈도 꽤 있었을 터이니, 이런 위험한 커리어 전환의 리스크도 감당이 쉬웠지 않을까 싶긴하다. 게다가 실패하면 다시 변호사 하면 되니 뭐... 


알고 보면 미국 유명로펌의 변호사의 삶은 정말 터프하고 복잡하다고 한다. 자신의 조그만 실수 하나가 클라이언트에게 엄청난 손실을 줄 수 있으니 정말 쫌스러워져야 하고, 내부 조직이 워낙에 경쟁적이어서 직장생활 자체에서 인간미를 찾기도 힘들다고 한다. 그런 삶을 살다가 돌을 만지며 예술활동을 이어 갈 수 있다면 그런 커리어 전환은 그 자체로 큰 성공이었을 것같다. 


취미생활로 헬기를 조종하다가 아예 병원 헬기 조종사로 직업을 바꾼 이야기도 나온다. 실내에 머무르기 보다는 밖에서 뛰어 놀길 좋아하는 이 남자는 병원과 계약을 맺고 아웃도어 레저를 하다가 부상당한 사람들을 병원으로 실어나르는 비지니스를 시작했다. 이미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으니 실패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을 것이다. 최소한 심리적으로는 만족할테니 말이다.


여하튼 이렇게 커리어를 스스로 바꿀만한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들은 흔치 않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의 나는 쓰는 것보다는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언젠가는 다시 뭔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길 것이다. 그때 즈음에는 그냥 해 보는 취미가 아니라, 좀더 생산적인 -- 뭔가 돈이되는-_-* -- 그런 글쓰기를 시도해 보고 싶다. 풀타임은 아니더라도 파트타임 글쟁이 정도는 내 형편 안에서도 얼마든지 해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제는 읽으면서도 뭔가를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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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첫째주 미디어일기

by 오돌



이번 여름 영국 런던에 잠시 머무르면서 런던사람들에게서 받은 인상은 예의바르지만(polite), 친절하지는(kind) 않더라는 것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날라 온 투어리스트들까지 더해져 복작복작하는 대도시에서 친절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였을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런던너들은 예의는 집에 두고 온 것같은 무례한 관광객들을 속으로 흉보고 있을 거라는 상상도 해 본다. 



평생을 이태리 외교관으로 커리어를 쌓은 지오바니 델라 카사가 조카에게 들려주고자 예법에 관해 쓴 책, <갈라테오 혹은 예의바른 행동의 규칙 Galateo or, the rules of polite behavior>는 동양과는 다른 서양의 에티켓이 어떤 사고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 지를 잘 드러내 보여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삼촌이 나를 앉혀 놓고 예절교육을 시켜주는 것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델라 카사는 삼촌이라고 부르기엔 나이가 많은 편이다. 1503년에 태어나서 50대 중반에 세상을 떴으니 말이다. 델라 카사의 예법강연은 르네상스 시대 유럽 특히 이태리 상류층의 사회상을 들여자 보게 해주는 유리창과 같다. 

대화를 잘 이어가는 법, 대화를 망치는 법,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법, 유머를 사용할 때 주의할 점 (웃기는 것도 재능이나 억지로 웃기려 하지 말라), 테이블 매너, 옷입는 법 등 르네상스 시대 교양인으로서 알아야 할 예법에 대해 무작정 하라는 투가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 지 이 책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놀라운 점은 2013년에 읽더라도 그 조언을 받아들이는 데 크게 거리껴질 게 없다는 거다. '남녀칠세면 부동석'해야 한다는 류의 당시에는 그럴듯했겠지만 지금 따라하기엔 시대착오적인 그런 가르침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번역자가 손질을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오히려 스페인으로부터 전해 들어온 새로운 예법,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고급스런 의자를 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목조의자를 주라는 신풍속을 저자는 비판하고 있다. 


서양문화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서양인과 사교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찾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워낙 고전인지라 괜찮은 동네 도서관에서 어렵지 찾아 볼 수 있다고 한다. 




  


윌리엄 진서(Zinsser)는 90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하게 저술활동을 하는 문예창작과 교수이자, 영화평론가, 저널리스트이며. <Writing Well>이라는 대표작을 가지고 있다. 밤잠을 미루며 글을 만들어낸 여러 결과물들을 한데 묶은 이 책 <Writer who stayed>는 글쓰기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일독해 볼만 하다. 저자는 영화칼럼이나 여행기를 쓰기도 하지만 컬럼비아대학에서 자서전 작법을 오랫동안 강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신문, 영화, 글쓰기 작법, 자서전 쓰기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이 나온다. 아직도 타자기에 익숙한 나머지 뉴미디어를 바라보는 진서의 시선도 나름 재미나다. 





얼마전에 다녀온 휴스턴 우즈의 아침 호수 (요기가 하킴님 공부하셨던 곳 근처라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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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마지막주 미디어 일기




by 오돌



젠이는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젠이가 그새 좀더 어른스러워진 느낌을 주기도 하고, 살집도 제법 생겨났습니다. 키도 약간 자란건지 젠이가 저한테 앞발들고 달려들면 상당히 높이 치고 올라옵니다. 화장실도 제법 가리구요. 혼자서도 집에서 잘 놀고 그럽니다. 잊을만하면 하나씩 바닥에서 주운 물건 망가뜨리는 것만 빼면 귀염스러운 강쥐에요.  


가을맞이로 새로단장한 티비룸의 메인좌석을 차지하고 버티는 젠이 (어쩌라고~~).

 



지난 주에 읽은 책, <Contagious>. 유펜 워튼스쿨의 젊은 학자 조나 버거가 연구물을 모아서 낸건데, 말컴 글래드웰의 <티핑 포인트>를 좋아했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조나 버거가 어렸을 때 티핑을 읽고 영감을 얻어 연구자가 되어서 쓴 답장이 <컨테이져스>입니다. 





스탠드업 코메디와 비슷하면서 또 다른 성인을 위한 스토리텔링 공연 중에서 좋아하는 부분만 뽑아 봤습니다 (주의. 섹드립 난무). 동영상이 안보이면 일루 가서 28분30초부터 보기 바람. 

http://www.youtube.com/watch?v=W0XL0R1NV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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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세째주 미디어 일기

by 오돌

1. 다스 베이더와 아들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가 좋은 아빠였다면 어땠을까? 이런 기발하면서도 어찌보면 당연스런 질문에서 이 일러스트레이션이 만들어진다. 가장 압권은 스타워즈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 "내가 니 아비다"를 패러디한 삽화. 

내가 니 아비다. 
너 타임아웃!

..

2. 제인 쉐클레톤의 아일랜드




           

이 책은 남극탐험가 쉐클레턴 집안의 여자 사진직가 제인이 남긴 유작으로, 19세기말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 마을풍경과 인물사진을 담고 있다. 당시 아일랜드 사람들도 참 못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으리으리한 맨션이나 운하, 철도를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3. 습관의 힘 (The Power of Habit)


작년 나름 히트했던 책, <습관의 힘>은 하버드에서 엠비에이를 하고 좋은 직장 때려치고 뉴욕타임즈에서 박봉으로 일하고 있는 기자 찰스 듀히그의 역작이다. 유용한 책이지만 지나치게 단순화된 프레임 하나를 가지고 너무나 많은 것들을 설명하려다 보니 따라가다 보면 정신이 사나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첫 세 챕터와 마지막 부록이 가장 읽을만하고 나머지는 심심풀이 땅콩정도로 훑어 보면 좋을 듯싶다. 뉴욕타임즈나 슬레이트에 실린 북리뷰나 저자의 기고문만 봐도 책의 알짜메시지는 충분히 숙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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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보는 것들 (2013. 9월 둘째주)

by 오돌


     오랜만입니다. 


바쁘게 살면서도 틈틈이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이것 저것 많이많이 읽고 보면서도 기록을 남겨 놓지 않으니 나중에 그게 뭐였더라? ㅠㅠ 갸우뚱하게 되는 일이 생기더군요 (점점 머리가 나빠져서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그간 소홀히 했던 스카이넷 블로그도 다시 가꿀 겸, 미디어 소비기록도 남길 겸, 오랜만에 인사도 드릴 겸 겸사겸사 포스팅 하나 올려 봅니다. 


1. 

하루하루 조금씩 몇 장씩 읽다가 오늘 마친 책 하나. 주초에 우연찮게 학교도서관에 갔다가 주운 그래픽 노벨(만화라기 보다는 만화를 겸한 소설) <더 워킹 데드> 7권. <워킹 데드>는 지금 미국 최고의 인기드라마입니다. 케이블 드라마지만 CBS나 NBC같은 전통의 드라마 강자 지상파방송 드라마를 좀비화시키고 있는 초강력 핫한 작품이죠.  




이거 넷플릭스로 시즌 2 중반까지 보고, 집에서 넷플릭스가 끊기는 바람에 시즌 3로 넘어가질 못했어요. 근데 이 책은 교도소를 무대로 하는 걸로 보아 시즌3 중반 쯤 진도나간 것같았습니다. 


이 초절정 인기드라마는 만화가인 로버트 커크만이 지금 한참 쓰고 있는 동명의 그래픽 노벨을 모태로 하고 있습니다. 만화와 만화를 기반으로 하는 드라마가 동시에 진도를 빼고 있는 좀 특이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데요. 커크만은 어느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드라마와 만화의 줄기는 같지만 변주를 줘서 팬들이 둘 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신경쓰고 있다고 밝히더군요. 커크만은 드라마 제작에도 관여하고 있습니다.


5년째 지속중인 경제위기의 여파인지 전세계적으로 좀비의 인기가 매해 상한가를 치고 있습니다. 올해도 <월드워Z>가 히트를 쳤구요 (물론 극장에서 봤습니다). 심지어 <워킹 데드>의 배경이 된 아틀란타에는 좀비테마공원이 생겼을 정도이고요. 좀비가 쫓아오는 도망가기달리기 대회가 개최되기도 했을 정도로 좀비산업이 뜨는 중입니다. 일전에 한국의 무한도전이 좀비특집을 시도했다가 시원하게 말아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런 컨셉으로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 걸 미국 어른들도 좋아한다니, 역시 김태호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   

역대 미국 대통령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는 우드로 윌슨 전기영화. 


요건 1편 보고 2편을 남겨 놓고 있는 중. 테오 루즈벨트와 함께 미국 경제민주화의 아버지 격이라고 할만한 우드로 윌슨은 미국의 전통적 고립주의 노선을 버리고 세계평화와 민주주의 전파를 위해 미국이 특별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규정한 오늘날 표준이 되버린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을 확립시킨  인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재별개혁하고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전진시킨 정도의 업적에 비견할만할까요. 우드로 윌슨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별도로 정리를 해 볼 참입니다.  


3. 쌓여 있는 것들. 

Thinking in Numbers (by Daniel Tammet),

The Innovator's Dilemma (by Christen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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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균의 노래, 들국화의 "사랑한 후에"


가끔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를 보는데, 이 노래를 들었네요.  아마 한 두어달 전에 했던 에피소드인 모양인데, 저는 며칠전에야 보았는데, 소름이 끼친다는 말이 이런 건가 보다, 했습니다.  들국화라는 그룹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들국화의 노래를 들국화가 주는 감동과 가장 비슷하게 감동을 주면서도, 하동균이라는 가수에게 급관심을 가게 부른 게 아닌가....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심장을 파고드는 느낌이랄까?  너무나 슬프면서도, 비장하고, 철저하게 고독한 느낌..  정말 예술은 위대하네요..  이 에피소드에 제가 좋아하는 JK 김동욱, 알리, 뭐 쟁쟁한 가수들이 나왔는데, 다 들국화가 주었던 감동을 뛰어넘는 곡해석이 없더라구요, 제게는.  결국 1등을 했던 정동하도 전 별로던데..  하동균의 이 노래는 정말 너무나 충격적일 정도로 감동적이라서, 며칠을 내내 들었습니다.  가사도 정말 예술이더군요.  하동균이라는 가수는 처음 들었는데, 정말 노래 잘하는 가수가 이렇게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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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을 소개합니당~

by 오돌


지난 주에 휴메인 서사이어티에서 유기견 업어 왔습니다. 입양을 맘먹은 지 대략 1년만에 소원성취했네요, 흐흐. 작년부터 유기견 보호소도 여러 차례 방문해 보고 했는데 딱히 제 처지에 맞는 강쥐를 찾질 못했어요. 저야 집에 아이들도 있고 해서 좀 얌전하고, 마눌님이 무서워 하지 않을 그런 사이즈에 너무 작지도 않은 말 잘듣는 강쥐를 원했지요. 저는 골든 리트리버를 좋아하는데, 사이즈가 준대형이라 좀 망설여졌어요. 작년에 아주 맘에드는 아주 우아한 강쥐 녀석을 발견했는데 운대가 안맞아서 입양을 못했죠. 


그렇게 그냥저냥 시간을 보내다가 휴메인 서사이어티 사이트에서 웰시 코기 강쥐를 발견하게 됐어요. 갑자기 맘이 동하더라구요. 다음날 바로 차를 몰고 오돌 주니어와 함께 유기견 보호소로 달려 갔습니다. 근데 생후 2달 정도된 웰시 코기 강쥐 세 마리 모두 누가 침발라 놓아서 좌절하던 차에, 한 사람이 포기의사를 밝혔다는 특보가 날아들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입양의향서를 작성해서 내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 전부 데리고 다시 유기견 보호소로 돌아 왔습니다.  유기견 면접을 위해서였죠. 


이렇게 해서 웰시 코기 강쥐를 접견하게 되었습니다. 뭐 살살 녹을 것같은 귀여운 강아쥐였죠. 약간 말썽 좀 부릴 것같은 인상이긴 했어요. 이가 막 나는 중이라서 그런지 잘 깨물더군요. 근데 신기하게 집 아이들이 초반 잠깐 흥분하고 나서는 그다지 웰시코기 강지에 호감을 못느끼더라구요. 특히 말못하는 둘째는 별 무관심. 마눌님은 이 강쥐 집에 들이면 다 깨물겠다고 정색. 저도 기대와는 달리 이넘이다라는 느낌은 못받았습니다. 


그래도 어렵사리 온김인데 한 마리 더 접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왔다갔다 하면서 눈여겨 본 강쥐 한 마리가 더 있었거든요. 물어 보니 11개월 된 래브라도 리트리버 암강쥐라는데, 제가 보기엔 굉장히 성격이 나이스해 보였어요. 약간 shy해 보이긴 했지만 덩치가 작아서 위압적이진 않아 보였거든요. 거기서 일하는 분이 1살이면 덩치는 성견이나 다름없다고 말해줬습니다. 크기는 래브라도 미니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꽤 작았습니다. 저는 혹시 보호소에서 스트레스 받고 자라서 제대로 키가 못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대요. 아님 부모 중 하나가 미디엄 사이즈라서 형체는 래브라도지만 사이즈가 작은 건지도... 


색깔은 블랙이었어요. 사실 블랙은 리트리버종 중에서 인기있는 색은 아니거든요. 골드나 우윳빛 색깔, 초콜릿 색을 사람들이 더 좋아하죠. 그래서 그랬나, 유기견 보호소의 어린 강쥐들은 금새 금새 입양이 되는데 요넘은 1살이 다 되도록 입양이 안됐나 봐요. 들리는 말로는 이 전 보호소에서 입양이 안되서 안락사될 뻔 한 걸 지금 보호소 사람이 발견하고 업어온 거라더군요. 그러니 어쩌면 제대로 된 가정에서 자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을 가능성이 꽤 있고, 이 말은 트레인이나 사회화가 잘 안됐을 거라고 보기에 충분한 거지요. 이미 청소년기에 들어가는 나이니 어렸을 때 습관을 쉽게 고치기도 힘들 수 있고.... 


근데 신기하게도 애들이 이 강쥐를 좋아하는 겁니다. 30분 가량을 좁은 방에서 같이 보냈는데 내내 애들이 강쥐랑 잘 놀더군요. 처음 방에 들어올 땐 살짝 쫄아 있었던 강쥐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대며 모든 이들에게 살갑게 잘 대하더라구요. 이넘도 잘 보여야 입양된다는 걸 알았을까요?


이런 저런 걱정도 있었지만 대략 1시간에 걸친 관찰과 직감으로 이넘이면 우리집에 맞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이넘은 우리집에 와 있었죠. 원래 이름은 젠드라라고 하는데 부르기 귀찮아서 그냥 젠이라고 부릅니다. 





위에서 보면 사이즈가 작아 보이지만 그래도 옆에서 보면 꽤 길어요. 과자로 꼬셔 가면서 앉아 자세를 가르쳤습니다. 뭐 10초를 넘기긴 힘들지만, 그래도 사진을 찍을만은 하네요. 



집에 들인지 3일 정도까지는 보호소에서 보던대로 얌전하던 이 젠 녀석, 대충 분위기 파악이 끝났다 싶은지 그담부터는 조그마한 사고를 치기 시작하네요. 알고 보니 장난기도 많고, 생각보다 훨 활달합니다. 저는 리트리버 종이라서 조용할 줄 알았는데, 강쥐라서 그런가 짖기도 곧잘 하고 특히 집지키는 개 놀이를 잘 하네요. 문소리에 정색하고 반응할 땐 천상 가드견입니다. 


그래도 화장실가는 거나 이런거는 아무 문제없이 금새 적응했습니다. 머리가 좋은 것같아요. 아직 서열정리도 더 해야 하고, 가르칠 게 많아요. 어제 밤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유리창에 붙어 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제 이동 책상에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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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BBC 런던본사 방문기


방송의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 세계 최초의 전국방송국, 역시 세계 최대의 공영방송국이기도 한 영국의 비비씨  투어를 하루전날밤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나는 가족과 함께 잰걸음으로 방송국을 향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바삐 움직이는 자동차와 사람들로 더욱 북적거리는 런던의 하늘은 여느때처럼 구름이 짙게 드리워졌고 거리는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버스 정거장에서 하차한 후 5분쯤 걸으니 저만치 방송국이 시야에 들어 왔다. 교회 뒤로 보이는 건물이 비비씨의 원조 사옥이다. 세계 최고, 최대의 방송국은 생각보다는 훨씬 아담하고 수수한 느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1922년에 설립된 비비씨는 원래는 공영방송이 아니었다고 한다. 영국체신청과 6개의 텔레컴회사가 힘을 합쳐 라디오서비스를 실험해 보고자 만든 방송국이 비비씨였는데, 광고로 인해 프로그램의 질이 저하될 것을 우려한 당국의 규제로 인해 비비씨는 시청자로부터 수신료를 걷도록 강제된다 (위키피디아 참조). 짐작컨대 당시 정치적 파워가 막강했던 신문사들이 비비씨의 뉴스서비스가 자신의 밥그릇을 깨지 않을까 견제한 결과로 비비씨가 공영화되지 않았나 싶다. 어찌됐든 수신료가 처음부터 술술 잘 걷히지 않았던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그 바람에 상업적 목적으로 들어왔던 회사들은 비비씨 사업에서 슬슬 손을 떼게 되고, 자연스럽게 비비씨는 공영방송으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유서깊은 건물인만큼 간직한 사연도 많다. 2차세계대전 중에 비비씨의 건물은 독일군의 포격을 당하기도 했다 (사진으로 보이는 유니온잭 밑으로 보이는 건물의 중간즈음이 포격으로 날아갔고 7명의 직원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를 안내했던 가이드는 포격당일날 관련소식을 전하던 비비씨 뉴스의 일부를 들려 주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불과 10여년 전에도 IRA군의 폭탄공격이 감행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건물에 들어서자 마자 삼엄한 감시의 눈길이 느껴졌다. 투어를 하기 위해 우리는 마치 공항에서 하듯 안전요원들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비비씨의 어제와 오늘.


구사옥은 교회 뒤로 감쳐줘 있던 신사옥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위 사진 우하단 푸른 건물), 신사옥은 훨씬 모던한 느낌의 건물이었다. 보아하니 라디오방송은 구사옥에서, 뉴스방송은 신사옥에서 하는 식으로 역할이 분담되고, 드라마같은 방송프로그램 제작은 다른 곳에서 하겠다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 정도로 공간이 넉넉해 보이지 않았다. 



                         좌측으로 구사옥이 보이고, 푸른 유리건물이 최근에 지어졌다는 신사옥이다.



                                                         비비씨 방송국의 오리지날 로고

 


                                                 영국왕실에서 처음 사용했다는 로얄 마이크로폰




                             영화배우 비비안 리 등 유명인이 사용한 비비씨 스타일의 마이크


중년의 남자와 젊은 청년으로 한 조를 이룬 우리의 가이드들은 방송국의 역사에 대해 한참을 소개하더니 조금씩 흥미를 잃어가는 우리를 방송국 현장으로 몰고 갔다. 구사옥 지하로 내려가 진짜 라디오 녹화실을 볼 참이었는데 아차~ 문이 잠겨 있어서 실패~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서 이번에는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개방송이 이뤄지는 현장 스튜디오. 대략 350석 규모의 방이다.


이 곳에서 U2와 같은 숱한 유명 뮤지션들이 무료공연을 했다고 한다. 가이드는 유투가 얼마를 받았을 것같냐고 물었다. 누군가 천 파운드라고 답하자 다른 이가 무료봉사였을 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젊은 가이드는 아이패드로 이곳을 거쳐간 가수들 공연 사진을 주르륵 보여주며 이들에게 67파운드 정도를 지불했다며 씨익 웃는다. 이런 건 한국하고 크게 다를 바가 없나 보다. 가수들 입장에서는 홍보가 되니 불만이 없고, 방송국은 저렴한 비용으로 유명 가수 불러다 놓고 시청자들에게 무료공연을 선사할 수 있으니 좋다. 단 400장의 행운을 수만명의 지원자들이 나눠 가져야 할 정도로 표경쟁이 치열하다. 


이번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라디오 드라마 제작체험. 


우리를 라디오 녹화실로 들이더니 중년의 지긋한 가이드 분은 느닷없이 방송제작을 한다며 자원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6명이 필요했는데 미국에서 온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부부가 자원했을 뿐 사람들은 서로 눈치보기 바쁘다. 나는 큰딸보고 한 번 해보라고 옆구리를 쿡쿡 찔렀는데 이를 본 가이드가 올커니 하는 표정으로 우리 둘 모두를 불러 냈다. 여차저차 미국인 둘, 미국거주 한국인 둘, 영국신사 한 명이 대본집을 받아둘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마이크 앞에 섰다. 



왼쪽의 미국 아저씨는 방송을 완전 즐기는 스타일로 지금이라도 방송계에 진출해도 크게 될 것같은 분이셨다. 오른쪽 빈 자리가 내가 섰던 곳. 


성우 모집이 끝나자 가이드는 효과음을 담당할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나이 지긋하신 영국 노년신사들은 다 뒤로 빠지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투어 시작과 함께 코피를 터트렸던 사람--이 강권에 못이겨 방 한 켠에 놓여진 테이블 뒤로 세워졌다. 



                      효과음 제작소. 테이블 위에 피리같은 걸로 샴페인 따는 소리를 만들기도 했다.  


녹음이 끝나자 가이드는 하이라이트를 들려 줬고 사람들은 연신 키득거리기 바빴다. 들어 보니 역시 노년분들이 연륜에 맞게 감정을 실은 목소리로 혼신의 연기투혼을 보여 줬고, 나같은 사람의 목소리는 대본 따라가기 급급해 보였다. 가장 좋은 연기력을 선보인 위 사진의 주인공 아저씨는 나중에 방송뉴스 제작시간에도 빠지지 않고 기상캐스터로 개그방송 공력을 선보여 주셨다. 돌이켜 보니 투어온 사람들 6할은 영국분들, 4할은 미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실제 현장에서 달릴 때에는 미국쪽 투어리스트들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장거리 비행기를 타고 와서 본전생각이 났나 보다. 


끝으로 텔레비전 뉴스 제작현장을 보면서 길지 않은 투어가 마무리되었다. 1층 카페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떼우고 나서 무려 20여분을 기다려서 생방송 장면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아주 짤막한 기상 중계 순서. 보다시피 기상캐스터말고는 아무런 제작인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계화가 진행되었다. 헬렌이라는 이 기상캐스터는 생방송 시작 십여 분 전에 스크린 앞의 컴퓨터를 몇 차례 확인하더니 바로 녹화에 들어갔다. 왼쪽에 보이는 카메라는 원래 내 앞에 있던 것인데 큐싸인과 함께 뉴스실 내부를 보여주면서 캐스터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고, 자연스럽게 캐스터는 진행을 시작했다. 모든 게 다 설계된 듯 물흐르듯이 몇 분안에 모든 작업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비비씨 뉴스룸. 오른쪽에 비비씨 메인뉴스가 뉴스룸을 배경으로 생방송 중이다. 


비비씨에서 8년을 일했다는 와이프의 고등학교 동창의 전언에 따르면, 최근 대규모 인원삭감으로 인해 2천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이 와중에 그녀의 입사동기 대부분이 해고되었다고. 경제가 안좋으니 수신료를 인상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비용삭감을 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 방송국이 손쉽게 찾는 수단이 인원감축이다. 이런 일은 대처집권 이래 보수당 정권하에서 자주 일어났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공영방송은 정말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집권당은 열우당이건 새누리건 수신료를 인상하려 하고 그게 안되면 광고로 벌충하면 되니 말이다. 한국의 엠비씨나 케이비에스도 좀 볼만한 뉴스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어쩌다 찾아 보면 정말 끝까지 보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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